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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음악 영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by 화분 2015. 1. 9.

12월 말 어느 날 친구를 기다리다가 친구가 늦는 바람에 눈에 들어온 동네 서점에 들어가 책을 구경하는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란 두꺼운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전에 이 작품이 대단한 작품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거나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의 팬이라서 그런것이 전혀 아니라, 단지 1Q84에서 아오마메가 은둔 생활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 이 책이었다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단지 그 책 제목이 특이해서 어렴풋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는 기억 만으로 그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던 것 뿐이다. 

어쨌든 그 두꺼운 양장본 책을 집어 들고 무심코 읽게 되었고, 그러한 고전이 생각보다 눈에 잘 들어왔기 때문에 조금 더 읽고 있었고, 그 친구놈이 꽤나 오래 늦은 덕분에 60 페이지 정도를 읽게 되었고, 무슨 바람과 충동이 들어 그대로 내려놓지 않고 덜컥 구입을 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이 60 페이지나 읽었다는 아까움과, 책의 두께에 비하여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도서 정가제 덕분에  인터넷으로 구매를 하더라도 이전같은 대박 할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썩을놈들!)들이 반영된 결과이다. 

참고로 원본은 3권으로 나온 책인데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3편을 한 권으로 묶어낸 채수동 역의 동서문화사의 책이었다. 가장 많이 팔린다고 소문나 있는 민음사 판은 3권으로 나오는데 내가 서점에서 찾아 읽어본 바로는 나한테는 동서문화사의 책이 더 읽기가 편했다. 넓은 페이지에 작은 폰트로 12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읽기 참 힘들다.



책 제목 그대로 카라마조프가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책이다. 탐욕스럽고 방탕한 아버지 표도르와 그 세 아들인 드미트리(미차), 이반, 알렉세이(알료사)의 이야기이며, 아버지의 죽음을 미차가 뒤집어 쓴다는 큰 줄거리가 있지만 그 배경에 대한,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정말 방대한 책이다. 그렇지만 그 방대함에는 각자 개성이 뚜렷한 인간에 대한 탐구와 그 인간들이 대표하여 보여주는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 그리고 아이들의 무게감 있는 등장이 기억에 남는 책이다.


개성이 뚜렷한 형제들과 인물

어쩜 이렇게 세 형제가 다를 수 있을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지만, 당연히 작가의 의도라는 점 역시 이해할 수 있다. 탐욕스러운 표도르, 과격하고 감정적이면서도 뜨거운 가슴을 지닌 드미트리, 차가운 머리와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진 이반, 그리고 선하고 신앙심이 깊고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알료샤. 형제들 뿐 아니라 등장 인물 모두가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데, 작가는 개개인의 캐릭터를 아주 자세하게 서사시를 쓰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덕분에 책의 분량이 어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당시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을 이 책 안에 보여주기 위하여 다양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것 아닌가 싶다.  


선과 악

드미트리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보면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미트리 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 - 심지어 알료사 조차도 - 내면에 악한 모습이 숨어있을 수 있다. 알료샤 역시 카라마조프가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선과 악이 어떻다는 판단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알료샤 처럼 마냥 선한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닐듯 하다. 만약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지 않고 다음 편을 썼다면 알료샤의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엿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 


유신론과 무신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핵심적이고 가장 감명깊은 부분으로 이반의 대심문관을 이야기한다 (기독교 신앙자들이 더 열광하는 부분일 듯 하다). 그리스도와 그를 반대하는 대심문관에 대한 이야기를 무신론자인 이반이 신앙심이 깊은 알료샤에게 전한다. 대심문관의 열정적인 주장을 그리스도는 그대로 듣고만 있다가 마지막 순간 대심문관에게 조용히 입맞춤 하면서 마무리짓는다. 이반과 알료샤 또한 서로의 주장은 다르지만 대립하지 않으며, 이반은 이 이야기 끝에 이반에게 조용히 입맞춤 한다. 부조리하고 힘든 삶을 그리스도와 신앙심이 따뜻하게 지켜준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부조리하고 빵 한조각 먹기 조차 힘겨운 현실 세계를 과연 신앙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립도 의미가 없고 결국 개인이 선택할 가치관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아이들

이 책에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뜻밖에 자주 나온다. 어찌보면 줄거리와 상관 없어 보이지만 장식이라고 하기엔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일류샤의 죽음은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개인적으로 이반의 대심문관보다 더욱 인상에 남는 부분이 아이들의 등장이었다 (뜻밖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들, 엄밀히 말하자면 어른들의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희망섞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이 나타난 것 아닌가 싶다. 마지막 일류샤의 죽음에서 모든 아이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장면은 세상의 부조리함, 선과 악 그리고 종교적인 다툼에도 불구하고 선한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닐까.


두꺼운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사실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살면서 언젠가는 다시 책장을 펼칠 날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언젠가 나이들어 연금으로 연명할 때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면 다시 볼 날이 빨리 오면 안되는구나.

다음 책은 좀 더 얇고 쉬운 책으로 골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