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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by 화분 2015. 3. 18.

그리스인 조르바 읽으면서 옮기기

 

1.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갖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2. 

내게는 황소도 암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나는 내 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을 굴러 보지 못한 내 인생이 부끄러웠다.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쁜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3.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4.

조용히, 애무하듯이 그는 꿀처럼 짙고 느린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대지, 물, 생각 그리고 인간의 전 우주가 먼바다로 흘러들고 있는 것 같았다. 조르바는 저항도, 질문도 하지 않고 행복하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숨겨진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듯이 대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버릇 들게 된 것들, 예사로 보아 넘기는 사실들도 조르바 앞에서는 무서운 수수께끼로 떠오른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5.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6.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줄 수 있어요. ...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원래 까마귀는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에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죠.

나는 죽어 가는데도 화냥년들은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 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는데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고 있으니 이게 보통 속상한 일인가요

7.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뿐이었다.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사내가 오겠지요...

8.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10.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