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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기업의 UX 디자인

by 화분 2012. 12. 14.

회사에서 임원, 팀장들에게 일별, 월별로 종이에 프린트하여 보고하는 작업을 효율화하기 위하여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프로젝트에서 보고서 화면(대쉬보드) 디자인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회의에 참석했는데, 여전히 회사에서 구축하는 전산 시스템들이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회의를 시작하니 내부 직원이 직접 설계한 몇 가지 화면의 디자인을 보여주고 의견을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화면이 "잘 디자인 되었는가"이다. 

UI가 잘 디자인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쉽게 볼 수 있고, 원하는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가 누구인가(Persona), 원하는 정보와 기능이 무엇인가(Task)를 먼저 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 제공하는 정보가 목적에 맞추어 잘 디자인 되었는가 (심플하게, 중요한 정보가 잘 강조되어) 기능이 적절하게 제공되고 있는가(적절한 UI 구성 요소가 적용되고, 적절한 순서와 흐름으로, 쉽게 기능을 찾아)를 고려하여 화면을 설계하고 평가를 해야 한다. 


화면을 설계한 담당자가 화면의 설계 안에 대하여 여러가지 설명을 한다. 이 화면에서는 차트를 넣어 정보를 보기 편하게 하였고, 필터 기능을 사용하여 원하는대로 데이터를 고를 수 있게 하고, 보고서를 변환,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고, 의견 공유를 위하여 코멘트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고...

이러한 이야기는 화면을 보기만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미 화면에 들어있는 요소들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기 떄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보들과 기능들이 어떤 사용자를 위하여 왜 제공되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1. 사용자

"이 화면을 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임원이 보는 화면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필터 기능과 보고서 변환, 공유 기능을 임원들이 원하나요?"라고 물으니 그건 실무자가 사용하는 기능이라고 한다.

"이 화면의 주 사용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다시 물으니까 원래는 임원이 타겟이지만 실제는 실무자들이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임원이 많이 쓰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임원'에 대한 실체도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는 모습이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나이 많은 노인네를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상무급이라고 생각한다. 

사용자가 명확하지 않다.


2. 요구사항(정보, 기능)

임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터뷰를 해봤냐고 물어봤다. (예상은 했지만) 대답은 "아니오"였다. 임원들을 인터뷰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겠지만, 괜히 임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가 대책없이 많은 요구를 하게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임원들은 말이 많고 본인들의 의견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요구를 물어보면 정말 많은 요구를 할 것이고 (프로젝트의 범위를 고려하지 않고, 심지어는 본인이 요구하는 내용이 서로 충돌되기도 할 것이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요구를 안 들어주기 힘든게 사실이다. 일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에서도 수많은 사용자들의 요구를 모두 받기 어려운것과 같다.

그렇지만 인터뷰는 해야 한다. 특히 사내 시스템같이 사용자가 명확한 경우에는 막연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제품보다 훨씬 사용자를 파악하기 쉬운 기회가 있다. 

위에서 하는 걱정은 인터뷰를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Open question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면 당연히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쏟아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Closed question으로 질문을 하고, 요구하는 사항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의 대상과 내용을 한정하여 프로젝트 범위 밖의 의견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요구에 대하여 어떤 상황에서 왜 필요한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질문을 추가하여 정말 원하는것이 맞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아무튼 현재의 상태에서는 어떤 정보와 기능을 누구에게 왜 제공하는지에 대한 정의 없이 시스템에서 제공할 수 있는 기능들을 화면에 나열하는 정도의 설계만 이뤄진 상태였다.


3. 어떻게 보고서를 보게 할 것인가?

대화를 나누면서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주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임원들을 어떻게 시스템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임원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을 시킨다. 원하는 보고서가 있으면 아랫 사람에게 연락하여 가져오라고 하면 잘 프린트헤서 가져온다. 얼마나 편리한 시스템인가? 그런데 이 편리함을 버리고 인터넷에 직접 접속하여 보고서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 더 불편해 지는 상황이다. 임원들이 과연 스스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보고서를 보게 될까? (물론 임원들에게 시스템을 사용할 것인가를 물어보면 당연히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시스템을 구축해도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보기 좋게, 쓰기 편하게 만들어놓아도 사용자가 실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특히 임원들이 사용자라면 시스템에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최초 시스템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철저하게 준비한 상태에서 나머지가 진행되었어야 한다.


사내 시스템의 UI가 최악이라는 점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UX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의견을 묻는것이 그나마 발전된 모습인 듯 하다. 그렇지만 그 나은 사람들조차도 시스템의 설계에 대한 접근 방법은 한계가 있다.

사용자에 대한 정의가 없는 상태이므로 요구사항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연히 시나리오, 태스크는 나오기 어려운 상태에서, 화면에 어떤 정보를 보여줘야 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면을 설계한다는 것은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디자인을 바라기 어려운 상태이다. 


기업의 시스템에서 UX는 생산성을 높이는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UX에 투입하는 비용이라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상의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UX가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생산성을 높이자고 외쳐대는 국내 기업들은 막상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기업에도 UX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