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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음악 영화

소설 한강

by 화분 2013. 12. 5.



태백산맥을 읽고나서 한강을 펼쳐들었다. 소설이 이야기하는 시기를 보았을 때 태백산맥의 여운이 자연스럽게 한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한강은 달랐다. 친일파에 대한 비판은 공통적인 이야기이지만, 태백산맥이 해방 후 민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강은 민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일민과 유일표가 기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희망을 찾아 농촌에서 시골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희망은 남의 이야기였다. 엄청난 고생으로 좋은 학교를 나와도 연좌제에 묶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고,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박봉을 받으면서 취직한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리거나 먼지를 많이 마셔 몸이 안 좋아지고 그나마 그렇게 고생해서 모아놓은 피같은 돈은 8.3 조치로 맘대로 쓸 수 없는 돈이 되어버린다. 희망이 보이면서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 희망은 저멀리 날아가버리는 세상이다. 나름 성공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희망은 잡지 못한다. 고시에 붙어 검사가 되어도, 군대에서 별을 달아도, 기자 생활을 하거나 대기업에 취직을 해도 부당함에 맞서는 순간 희망은 사라져버린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70년대의 경제 발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경제 발전은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로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잘못도 했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건 그 사람 때문이라는 이야기로 대꾸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것이 과연 무엇인가? 농촌이 잘 살게 되었는가? 서민들이 정말 잘 살게 되었는가? 세상이 조금이나마 평등해졌는가? 지금의 국가기관 선거개입 사태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정확한 영향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당시의 경제 발전에 대하여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정권에 장악된 언론에 의하여 만들어진 허상은 아닌가? 


군사 정치 시절에는 빨리빨리 대충대충 일하는 방식이 만연했다. 남들보다 먼저 고속도로를 개통하기 위하여 무너진 공간을 돌이 아니라 흙으로 대충 매우면서 공사를 강행하거나 시장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하여 급하게 지어올린 아파트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지금까지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남들이 하는 것을 모방하여 빨리빨리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빨리빨리 일하는 방식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은 애플을 모방하여 빠르게 제품을 내놓고 가장 많은 핸드폰을 팔고 있고 기술 수준 역시 최대한 가까이 따라갔지만 그 이상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다.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5등 안의 회사가 되었지만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을 넘어서는 기술력은 보여주지 못한다. 


70년대는 지금 사람들의 모습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역과 빈부 격차에 대한 사회의 갈등은 지금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대기업이 잘되야 서민들도 잘살 수 있고, 대기업에 물이 차야 분배할 수 있다는 낙수 효과라는 선전은 40년이 지난 후에도 유효하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면 종북이라는 족쇄를 차고 평범한 회사원이 영문도 모른채 국정원에 끌려가 누명을 쓰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70년대의 경제 정책과 정치 방식을 아직까지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사실은 70년대에는 사회 인프라는 부족했지만 사람들의 교육이나 의식 수준, 기술력,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 등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매우 잘 갖추어진 상태였고 그 기반에 군대식으로 몰아부치는 일하는 방식이 잘 맞아 떨어지면서 큰 경제 성장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70년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성과이다. 그렇지만 그 피땀의 대부분의 보상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도록 일하면서 희생한다. 이제는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이 노력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강은 7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찾는 것은 새로운 과제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고생을 많이 한 주인공들이 더 잘 되면서 끝나기는 해피엔딩을 바라게 된다. 유일민이 임채옥과 결혼하기로 한 것이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랄까. 그렇지만 많은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여전히 힘든 생활을 한다. 있는 자들은 여전히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갖고 대통령의 암살 이후 들어선 새로운 군사 정권은 더 많은 사람들을 짓밟는다. 한강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현대 역사책이고, 말없이 넓은 가슴으로 흐르는 한강과 같은 소설이다.